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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들도 훌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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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12-1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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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시대가 각각 따로 마디가 있다.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있어 왔다. 가령 사람들에게 유아기가 있고 성장기가 있고 장년기, 노년기가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발생기라든가 성장기라든가 중흥기, 몰락기라든가 해서 구분하여 보는 관점은 일종의 생물학적인 관점이어서,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그런 생물처럼 운명론적인 역사의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자칫 유아기를 어른이 되는 준비과정으로 본다든가, 노년기를 인생의 몰락기로 보는, 청장년을 정점(頂点)으로 한 해석을 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시대의 삶은 그 정점을 향해 걸어가는 일종의 준비단계로 보는 상대적 해석을 하게 된다. 가령 초등하교 시절을 대학 입시를 위한 단계로만 본다든가, 나이든 사람은 투표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청장년 시대만을 중심으로 인생관을 가지게 한다.

 

인생은 각 시대가 따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우리는 나이어린 유년기도 그 자체로 독자의 가치와 의미가 뚜렷한 한 인생의 마디로 보아야 한다. 그 나름대로의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그런 인생의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소박한 마음, 그 천사와 같은 맑은 마음을 우리 주님도 천국에 들어갈 인간의 조건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옛날 웃으운 말로 어떤 노인의 영안실 영정에 백일 때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재미로 한 말일 터인데 뜻이 깊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백일 때의 모습을 닮을 수 없다는 것이리라. 백일 때는 그때 그대로, 나이 들어서는 그때 그대로가 최고의 인생이란 뜻이어야 한다는 비유가 거기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 피어나는 꽃과 같은, 모든 것이 현란한, 삶의 감격과 포부들로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 같은 모습이 고마운 것이다. 환갑이 지난 나이는 경륜과 슬기로 인생의 꽃이 될 수 있다. 청년기는 그 솟는 힘과 활발한 기력으로 인생의 중요한 대역을 감당한다.

<소녀시대>가 상징하는 애 띈 모습만이 황금기가 아닌 것이다. 그들을 닮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런 시대는 누가 아무리 붙들려고 해도 언젠가는 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이 다 간 것이 아니다. 소녀시대가 지나도 우리는 살 만한 감격이 뭉클한, 보람이 가득찬 다른 세대가 기다리고 있다. 30대는 30대 대로 자리 잡힌 성숙의 향기가 짙다. 중년은 중년의 자세대로 그 늠늠함이 당당하고 부럽다. 한번 씩 겪어가는 시대는 그 시대대로 따로따로 살 때에 우리 인생의 다채로운 프리즘이 무지개일세라 빛난다. 인생 대대로 어느 때든 넘치는 가치와 그 보람이 풍요하다.

 

역사에도 마디가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만이 역사의 정점이 아니다. 우리 시대가 무언데, 앞서 간 시대를 우리 표준 따라 판단하고 정죄하고 더 나아가 심판한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 시대가 역사의 표준인가. 우리 시대가 지난 역사를 통틀어 판단하는 그런 것은 오만이오 그야말로 시대착오이다. 우리 시대도 옛 사람들이 살고 간 시대처럼 장구한 역사의 한갓 미소한 한 점의 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애써 살아간 시대를 두고 다음의 시대가 그들의 척도로 왈가왈부하되 평가를 내린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름들을 우리 표준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의 현장과 멀리 떨어진 편안한 오늘날의 위치에서, 아무 제약과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심지어 <종북이 적이란 말이냐> 하며, 다그치는 세상에 안주하면서, 지나간 압제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할 말 못할 말 마음대로 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상실되었다고 하는 세상에 다리 펴고 살면서, <국민정신총동원>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국가가 말만하면 동원할 수 있었던 그들의 삶을 오늘의 평지에서 아는 지식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오만 정도가 아니라 부끄럽게도 무지요 맹목이다. 몰지식이요 몰상식이다. 역사학의 거두라고 일컬어지는 레오포드 폰 랑케라는 학자는 각 시대는 각각 따로 따로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진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고별사처럼 남긴 말에는 역사의 대헌장이 들어 있다고 해서 과언아 아닌, 오묘한 말이 하나 들어 있다. 곧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역사는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지만 현재를 결정하고 있는 실체이다. 그 과거가 실제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나간 날들을 남의 일들처럼,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들처럼, 남의 집 일들처럼 비켜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훌륭했다.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를 자랑하고 싶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신라 시대도, 고려 때에도, 조선조, 그리고 일제 때에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그리고 해방이후 건국 시대를 거처 6.25전란 때에도 우리는 대단한 힘으로 살아남았다. 4.19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업적들을 남기면서 일류국가로 나셨다. 어느 시대가 우리의 자랑할 만한 기념탑이 아니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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