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사람도 아닌가, 죽어서만 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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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07-10 15:30본문
한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를 훈련해 파송하는 과정에 필요한 서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순간 선교사는 사람도 아닌가, 아니면 정말 선교사에게는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선교사의 삶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또는 ‘살면 전도, 죽으면 천국’이란 말을 자주 봐 왔다. 죽으면 천국이란 말이 유난히 선교사들을 생각하게 했다. 주를 위해 순교할 각오가 아니고서야, 선교사로 지원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이다.
선교사는 유언장부터 작성해야
선교사가 죽음을 두려워하고서는 선교지로 파송될 수 없다. 그런 뜻에서일까, 선교사 파송예배는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하고 경건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다. 세상에 죽음을 향해 적지로 파송되는데 기뻐하며 환송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선교단체에서는 출국 전 준비사항으로 ‘영문 유언장 3부’, ‘손해배상청구 불제기 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선교사로서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와 다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선교사로 파송되기까지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심지어 죽어서까지 선교단체를 상대로 어떠한 손해배상도 청구하지 않는다는 포기각서까지 제출한다. 유언장에는 재산과 물품 그리고 시신 및 유골처리방법, 희망 매장지 등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된다. 이러한 내용은 통상적인 것들로 아버지학교나 부부교실 등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유언장 작성’하기라는 프로그램이나 ‘임종체험’이라 하여 실제 관속에 누워 뚜껑까지 닫아보는 보는 때도 있다.
그 순간, 모든 참가자는 눈물바다를 이룬다.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선교사로 파송되기까지 최종적으로 마음의 결단과 동시에 유언장을 작성하고 떠나는 것임을 알았다. 순간 놀랍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마음한 구석에는 뭔가 모를 다양한 생각들이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날 줄 몰랐다.
선교사이기에 손해배상청구마저 포기해야 ?
정부에서도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에 대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일임에도 한 명의 병사를 파견하기까지 국회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들은 최고의 엘리트로 선발하여 재건지원 업무를 비롯한 의료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막중한 사명감으로 임무수행에 임한다. 선발된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라 할까 대우도 엄청나다. 파병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자칫 전사(戰死)할 수도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 마찬가지로 영적인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처한 마을에 전기나 수도를 개설해주고 의료지원이나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등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는 민간 차원에서의 선교대사임이 틀림없다. 각 교회나 선교단체별로 지원하는 연간 선교비를 합친다면 수천억 원에 달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언어우드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의 헌신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하여 선교사들이야말로 영적 강한 군사로서 모든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아무런 보호 대책마저 없이 살아간다.
오히려 외국인이기에 종교전파나 포교활동을 법적으로 금지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투(死鬪)는 계속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들에게 보상과 대가는커녕 생명의 위협과 최소생계 유지에도 급급하다. 그들은 오직 천국에 대한 소망과 상급을 바라고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도 척박하다.
“선교사는 본인의 사망, 부상, 납치 기타 어떠한 경우에도 선교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손해배상청구 불제기 각서까지 제출하고 떠났기 때문에 심지어 죽어도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다. 파송한 것으로 더 이상의 어떤 책임도 없다는 한편으로는 너무 무책임하다. 이런 현실을 보면 과연, 선교가 이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물론 교단이나 교회별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파송 선교사에 대하여 교회나 교단이 전적 책임지고 선교비, 자녀교육비를 포함한 노후연금까지 지원하는 아름다운 곳도 많이 있다.
그러나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에도 못 미치는 매달 4-5십만 원마저 불규칙하게 지원하면서 온갖 간섭과 통제만 일삼는 파송 교회들은 너무 안일하다. 정식 선교사로 선발하여 파송했다면 현지 상황에 맞도록 전적 책임을 져야 한다. 몇 개국에 몇 명의 선교사 파송했다는 실적위주의 형식적인 지원을 과감하게 벗어던질 때가 왔다. 그런 선교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기에 한 명의 선교사라도 안정된 가운데 선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다 책임 있는 선교지원책을 연구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