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영적 평행감각 회복하는 일에 주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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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12-10 15:46본문
선교의 사명은 모두에게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를 향해 타문화권 현지 선교를 감당하도록 각국으로 파송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처럼 예수 믿기 좋은 환경 가운데 있는 나라도 드물다. 어디서나 마음대로 복음전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최고의 환경적 조건은 우선 예배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인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눈에 띄는 것이 교회 십자가라고 할 만큼, 같은 층에도 교파가 다른 교회가 몇 개씩이나 있다. 선교사가 꿈꾸는 사명이 한국교회 같은 선교지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소원인데, 정작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적 평행 감각이 흔들리고 있다.
유리 온실 속에 키우는 화초 같은 신앙
교인들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교회별로 서로 모시려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이다. 전도에 대한 개념도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를 교회로 전도하기보다,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을 우리 교회로 인도해 오는 수평적 이동이 전도가 되었다. 교회별 공동체 생활은 각별한 결속력으로 대단한 응집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응집력이 강해도 한국 교인만큼 ‘시험’에 약한 유리 온실 속에 자라는 화초 같은 미성숙한 신앙인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영적 인내력에 취약하다.
온실 속의 화초는 제때에 물을 줘야 하고, 잠시도 사랑을 주지 않으면 안 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말라 비틀어 죽지만, 야생화는 스스로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죽을 각오로 살아가기에 훨씬 향기롭다.강단에서 영적 성숙을 외치지만, 유리온실 속에서 한계가 있다. 성도 중에는 항상 영적 성인 아이와 같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일이 있다.
모든 문제를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신앙심과는 정 반대의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신앙의 연륜을 제쳐놓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이다. 목회자의 설교가 특정 자기를 겨냥했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은가 하면, 성도 간에 몇 마디 잘못 오간 말 때문에 상처받았다며 그 사람 보기 싫어 교회를 왔다 갔다 한다. 개척교회는 전도하라는 말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큰 교회로 떠나버린다. 오래된 교회는 성전 건축하는데 건축헌금 강요한다고 아예 교회를 옮겨버린다.
이런 교인은 이미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학습된 교회 문화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특정 교회에 소속되기보다 무교회주의로 교회의 특정 프로그램에 따라 골라 다니는 재미에 빠져있다. 웬만큼 일이십년씩 신앙생활 하다 보면 성경적인 말씀의 깊이와 신앙의 영성훈련이 뛰어날 것 같은데 정작 알고 보면 그렇지 못하다. 생각보다 뿌리가 깊지 못해 쉽게 바람에 흔들리고 강풍에 뿌리째 뽑혀나가기 일쑤다. 교회 내부 갈등으로 요동치는 모습은 결국 한국 교회 성장을 방해하는 신천지에 무너지는 결정적 요인이다.
목회자는 영적 평행 감각기능을 강화해야
대형 교회교육 프로그램은 얼마나 다양한 전문적 평생교육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른다.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활동의 전개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기능중 하나이다. 문제는 제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어도 구원에 대한 확실한 말씀중심의 교회로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목회자의 강단 자체마저 멀지 않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부흥 사경회라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씀 중심의 교육 형태는 이미 설 곳을 잃었다.
한국교회의 강단마저 주일예배 설교시간은 길어야 30분이다. 교인들은 기계적으로 이 시간이 지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성도의 풍성한 삶을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시켜야하기에 성도들의 인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설교가 길면 재미없고 교인들이 지루해한다는 말에 안절부절못하는 목회자는 비겁한 행위이다. 용감하려면 살아있는 말씀으로 지루하지 않도록 변신을 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람 귓속에는 달팽이관이 있다. 이 기능이 잘못되면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빙빙 도는 어지럼증 때문에 서 있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슬 같은 것이 사람의 몸 전체 평행 감각을 유지해주듯이, 한국교회의 기능은 영적 평행감각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설교시간, 찬양, 기도, 봉사, 전도, 금식, 철야기도 등 조금씩 줄어들다 보면 언제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영적 어지럼증 때문에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는 WCC 같은 종교다원과 혼합주의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세상의 교육적인 기능을 교회가 감당하지 않아도 세상의 교육기관들이 더 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영적 본연의 기능 감당을 위해 전문성을 높이고 오히려 영적 대각성 운동을 펼쳐야 한다. 말로만 예수 믿고 행함이 없는 병든 성도들을 구원해낼 방법을 찾아나서는 사역을 감당해야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