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세계적 사명- 국제선교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0001-11-30 00:00본문
지금은 글로벌시대
우리는 지금 엄청난 거대 세계경제질서의 글로벌시대를 맞고 있다.
거대 경제국인 미국과 중국의 격돌,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반목, 이처럼 세계적 주도권이 교차되는 바로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특별히 보냄을 받았다는 사명감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이상하게 오래전부터 세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은 1402년 세계지도를 그린다. 세계최초의 일이다. 한국교회가 그런 민족의 유산을 발굴하였으며, 동시에 한국교회가 그 철저한 기독교 보편주의로 한국의 전통과 기독교를 융합해서 거대 세계교회로 부상한 사실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다.
한국교회 : 민족교회에서 글로벌교회로
한국교회는 그 역사 처음부터 세계에 알려진 강력한 사도적 복음적 교회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는 그 뼈대가 긁어진 시대가 가 일제의 한국 침략과 통치의 기간과 중복되어 있어서 거기 대한 저항으로 한때 민족교회로 그 뼈대가 굵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민족의 자주와 독립의 구호가 묘하게도 강력한 기독교의 세계보편주의의 주장과 접속되고 있었다. 일제의 통치에 대한 도덕적 규탄이 세계평화라든가 자유의 원칙에 위배되고 세계의 대세에 거슬린다는 논리로 그 저항의 원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민족적 저항의 대상이었던 일제가 세계 제 2차대전에서 패전하고 한국이 해방되었기 때문에, 우리교회 본연의 세계교회 이미지를 회복하고 실용할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는 그 초창기부터 그 자신의 어려움과 신앙의 유치단계인데도 불구하고 강렬한 세계의식과 세계 선교의식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진수를 처음부터 전방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1907년 성령감림의 대부흥회에서 확인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세계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세계를 향해 거보를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 시대의 문제들을 그 핵심에서 꿰뚫어보고 거기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가를 천명하고 사회악을 고발했던 시대의 파수군들이었다. 당시에 국제정세라든가 거기 관련된 문제들을 그들만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들이 세계를 보고 그 역사를 감시하고 하나님의 경륜과 심판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한국교회: 세계적 퍼스펙티브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를 생각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국교회가 세계를 향한 교회의 예언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세계의식과 역사의식을 겸비한 거대조직으로 한국교회가 서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처음부터 뚜렷하게 서 있었고 또 한국인의 오래된 세계의식이 여기 공명하면서 한국의 세계 전망은 한국인의 세계진출을 놀라운 속도로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세계의식은 민족의식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1900년도의 미국국무성 한 보고서에는 한국이 <세계기독교의 기수 국가>라는 글이 눈에 뜨인다. 기수라고 하는 그 팀의 대표요 상징이란 뜻이다. 우리 한국이 세계 기독교의 대표요 상징이란 뜻이다. 한국은 이스라엘 말고는 하나님의 선민으로 그 역사적 대임을 감당할 기독교국가가 될 것이라는 1902년 <뉴욕타임즈>의 기념비적인 사설은 현대 기독교의 계시록으로 세계도처 환호로, 그 종소리가 요란하였다. 최근에 와서는 <골드만 삭스나> <만체스타 가디안>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The Economist>와 같은 언론사나 금융회사 및 학술지가 한국교회의 약동하는 靈力을 세계 최고의 금자탑으로 대서특필하고 있는 현실이다.
글로벌시대는 우리의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초대 한국교회는 그 헌금이 미국교회의 당시 헌금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는 초창기 1897년 교회가 아직 정식으로 조직되기도 전에 외국의 굶주린 난민을 위해 57불을송금을 한 일도 있었다. 한국교회는 글로벌시대의 사회윤리를 이런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 이 글로벌시대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시대로 인도할 수 있다. 한국 거대 경제를 일으킨 실체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
글로벌 세계의 실체를 직시하라
한국은 정치를 유난히 밝힌다는 말이 세계적으로 돌았다. 우리 정치에는 싸움과 고성과 비난 그리고 발악만이 있다. 상대방이 있다는 개념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밖에 없다. 싫으면 저주다. 대통령도 저주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는 독단의 극치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다는 초보적 인식도 없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신문의 전면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서특필되어서 한국사회가 다 그런 독단의 집단이란 인상을 주는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시대이다. 세계의 각종 차이와 이질과 격차가 다 그대로 노출되는 세계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독단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여러 다른 가치의 세계를 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는 기독교밖에 없다. 따라서 글로벌시대는 기독교의 시대라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맥아더 장군은 제2차대전이 끝나고 일보에게서 무조건항복을 받던 그 자리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곧 <앞으로의 세계문제는 군사적이 아니고 정치적이 아니고 경제적이 아니고, 신학적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새로운 세계에 우리교회가 가진 그 넘치는 신앙과 그 거대한 힘으로 약진해 나갈 것이다. 그런 시야와 생각을 품은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 역사의 무대에 대거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 거대 이미지
주일이면 1천만명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이동하며 왕래한다. 이른 새벽 기도회부터 하로 종일 그렇다. 이 거대한 힘이 세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펴는 일을 할 수 있다. 1907년 대부흥을 보고 미국 거대신문 <뉴욕 타임즈>의 한 기자가 소리친 일이 있다: 곧 한국에 태어난 사람들,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으로 선택하시었다. 그런 한국에 태어난 우리들, 이제는 바로 이 시대 글로벌시대에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회가 할 일이 그렇게 뚜렷하게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