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인 목회자의 능력과 검증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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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4-05-10 16:07본문
한국 교회를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빛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소금이 짠맛을 잃었기에 길거리에 내버려져 사람들의 발길에 짓 밝히는 지경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적인 현실은 점점 더 교회를 분열시키고 흩어지게 하고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전략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선장들은 과연 영적으로 안전 의식이 있는가. 침몰해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구원해낼 영적 선장이 지녀야 할 능력이 있는가. 영적 지도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그 한 사람의 선장에게 던지는 돌을 자신을 향해 나를 돌아보는 반성과 회개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목회자로서 성도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가는 영적인 능력과 말씀 중심의 흔들림 없는 목회 철학이 있으며 파수꾼처럼 깨어 경성하는 능력을 지녔는가. 주일 설교 원고마저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쓰레기 같은 설교를 베껴 쓰거나, 유명 목사의 설교를 훔쳐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인터넷 속에는 온갖 잘못된 이단들의 교리가 판을 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은혜스럽다고 베껴 섰다가는 성도들까지 고스란히 사이비교리 속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영적으로 안전한 말씀 준비를 위해 얼마나 말씀 연구하며 기도하며 영성 회복에 앞장서고 있는지 돌아보라.
한국의 기독교 선장은 과연 안전한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선장 한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었다면, 한국 교회의 선장인 ‘목회자’ 한 사람의 역량 마찬가지로 너무도 중요하다. 기독교를 손가락질하고 온갖 비방으로 도배를 일삼는 자의 마음속에는 선장답지 않은 선장에 대한 불신이나 지탄받아 마땅할 부도덕한 반사회적 행위가 기독교의 복음을 훼파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절대 복종하는 훈련에 익숙하다.
일찍이 권위주의적인 부흥사를 통해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은 저주라는 이분법적인 협박수준의 강조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회자는 어떤 악천후에서라도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철저함과 영적 거룩함으로 파수꾼처럼 깨어있어야 한다.
영적 긴장과 경계심이 사라져버린 목회자
이미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침몰하는 현실적 위협을 느꼈지만, 구명조끼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는 선장의 말을 믿고 끝까지 순종한 탓에 목숨을 죽음과 맞바꾸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선장을 믿은 것이 화근이다. 우리는 선장이라면 어떤 정도의 위기대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외형적으로만 단순하게 믿을 뿐, 실질적인 자격이나 능력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개척했다고 해서 모두가 개척교회가 아니요, 목사라고 해서 다 같은 목사가 아니다.
삭꾼 목자일수록 목회자를 잘 섬기고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축복의 열쇠임을 강조한다. 어딜 가나 무조건 축사하고 축복을 비는 물물교환의 법칙을 악용하는 무분별한 것도 절제되어야 한다. 순종과 복종만 강요하며 축복권이란 명분만 앞세우는 한국 교회의 현실은 험난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영적 안전에 대한 경계심이나 긴장감이 사라지고 찾아볼 수 없다.
영적선장은 오로지 말씀과 영성으로 무장해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를 먹이고 가르치고 사역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지 그렇지 않고서 어떤 것으로도 성도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를 통한 건전한 영성으로 훈련되어야 참된 영적 선장이다. 괜히 목회자랍시고 어설프게 설쳤다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단합을 빌미로 세상 구경이나 다니며 목회자의 사생활마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블로그나 카페, SNS등에 공유하는 용기는 웃음거리 일뿐, 결코 자랑거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행이나 맛 집 기행, 애견일기, 가정생활, 세상 뉴스비평 등 다양한 미디어 활동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사탄의 미디어 공격 전략이다.
설교는 앙상한 가지에 무슨 말인지도 모를 세상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기도원 강사나 부흥사마저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대고 무조건 아멘 만 강요하는 억지를 부리기 일쑤다. 참으로 한심하고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함량 미달의 목회 활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겸손한 얼굴 모습이 아닌 거만함으로 포장된 듯, 번지러한 기름기만 철철 넘친다. 목소리마저 한국 목회를 혼자 다 한사람처럼 교만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교회 집사를 수행비서처럼 대동하고 다니며 온갖 계산이란 계산은 다시킨다. 그것이 축복의 비결이라며 강조하는 영적 선장은 이미 하늘의 모든 영광을 혼자 독차지해버렸지만, 불쌍한 것은 그런 목회자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한 성도만 불쌍하다. 한국 교회는 멀지 않아 목사 안수 받은 목사를 앉혀놓고 목회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목회지 없는 평신도나 다를 바 없는 이름만 목사인 목회자가 넘쳐나고 있어 목사안수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이 한국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평신도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함량미달의 무늬만 목사를 양산해내는 무인가 신학 자체를 정비하고 목회활동을 빙자한 부작용이나 온갖 폐단을 차단하는 한국교회 갱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