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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도 정책(政策)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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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000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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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도는 문제가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교회에서 저 남한 쪽 변두리 벽촌에 전도여행을 갔던 학생들의 영상을 교회에서 틀어 주어 본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 중 몇 사람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그 생전 처음 보는 싀골의 노파 한 사람을 데리고 끓어 앉혀놓고 기도하자고 한 다음에 한 기도의 첫 마디가 “나는 죄인입니다. 그 많은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러 기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노파는 놀랐을까. 이런 것들이 우리 교회의 현실이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선교에는 신학과 정책이 있어야 한다.

선교에는 체계적인 신학과 정책이 뚜렷하게 잡혀 있어야 한다. 선교 전도라고 해서 뜨거운 마음과 불타는 소명감만 가지고 나가서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초기 선교사들의 공로로 일약 세계적인 교회로 발전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그런 과거의 선교성공의 방법이 무엇이었고, 어떤 정책을 따랐기에 그런 세기의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하는 것을 최소한도 학습하고 나가야 할 것이다. 외국 선교의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뚜렷한 학습을 하고 현지 사정도 잘 알고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왔던 선교사들.

우리나라에 1880년대 중반에 처음 왔던 미국 선교사들은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출신이 놀랄 만 하였다. 그들은 다 미국 동부의 명문가 출신들이었다. 다들 일류대학을 나온 당대의 엘리트층이었다. 나이도 열혈의 25. 26 대의 팽팽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다들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미국의 대부흥운동의 성령 감동을 받은 자들로서 실로 뜨거운 신앙에 불타는 헌신적 사도들이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잘 알려지지도 아니한 한국에 그렇게 대단한 청년선교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열정과 불타는 신앙과 그 명석한 청년 선교사들이 5년 6년을 쉬지 않고 뛰어 다녔지만 바라던 성과는 찾아오지 않았다. 다들 비웃었고, 더러는 폭행까지 하였다.

 

선교정책을 세우기에 이르다.

그들은 그 처참할 정도의 좌절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자존심과 교만으로는 선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 자존심을 다 걷어 차버리고 결국 1890년 중국에서 그들보다 먼저 와서 선교하던 선배 선교사 네비우스를 불렀다. 그래서 그가 와서 한 달 가량 묵으면서 세미나를 했고 그때 네비우스선교정책이라는 것을 세우고, 그 법에 따라서 선교하다가 이런 세계의 기적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교에는 뚜렷한 신학과 정책의 규정이 있어야한다. 다 함께 행동을 같이할 명백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현지사정에 임기응변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교의 명백한 방법과 행동의 통일이다. 그것은 선교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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