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는 고귀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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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09-15 15:20본문
삶은 곧 사명이다.
사람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 받고 태어난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하면서 살다가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것은 그 사명이 끝난 것을 의미한다. 사명 없는 삶이란 없다.
사명에는 천직이라든가 소명이라든가 직분, 직업, 전문직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있는데 대개는 다 하늘이 나에게만 맡겨주신 사역이란 뜻으로 쓰인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우리의 직업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천직으로 보고, 그것은 다만 순종만 하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역사 전체는 하나님이 섭리로서 우리들에게나 삼라만상에게 각각 다른 독자의 직분을 맡겨 수행하게 하시면서 역사 전체를 이끌어 나가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 어떤 미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섭리론과 사역론은 결국 같은 말이 된다.
사역에는 경계선이 있다.
모세는 120의 나이를 살았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 그의 눈이 흐르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건강하여서 도대체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가 죽은 까닭이 무엇인가.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공성사수 신퇴>라는 글이 빛난다. 공이 다 이루어지고 일이 수행되었으면 몸은 물러간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명은 다 그 한계가 있다는 뜻이 된다.
우리 주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가셨던 것이다.
각자의 사명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조각들처럼 그 위치와 색깔과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르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아주 뚜렷하다. 시편에도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란 글귀가 있다. 각 사람의 사명은 독자적인 것이다.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거기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인격의 고귀성이 있다.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그림은 깨진다.
그러데 중요한 것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느 한 조각이라도 빠지거나 깨져 떨어져 나가면 그 전체가 망가지고 만다. 전체가 일그러지고 만다. 주님께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일이 있다. 디지털 숫자와도 이것은 견주어 볼 수 있다. 디지털의 한 조각이 빠지면 그 숫자는 이미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사람마다 그 사명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바울의 말처럼 우리 몸의 지체가 각기 다르다고 하는 말과 견주어 보면 된다. 가령 같은 목사라고 할지라도 그 소명이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설교에 능이 있는 이가 있고, 교회행정에, 선교에, 조직에, 인간관계에, 사회사역에 남달리 능이 있는 분이 따로 있다. 각각 뭐가 다른 것이 있어서 우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모방이나 흉내는 자기 스스로의 천직을 경시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사명수행에는 고귀성이 있다.
사명은 그 생명이 순종에 있다. 부름에 끝까지 따르는 것이다. 옛날 애란의 수도사들이 유럽을 기독교화 시켰는데, 섬나라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유럽을 행향해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떠날 때에 돛은 높이 달지만 방향을 조종하는 조타기는 떼고 떠났다고 한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간다는, 절대 순종의 귀감이 거기 있었다.
사명 수행은 위기 때에 그 진가가 더욱 눈부시게 나타나고, 거기 어떤 고귀성이 빛나게 된다. 지난 6.25사변 때에 미군의 장성 아들들만 148명이 전사했다는 기록을 보았다. 영국 처칠 수상의 아들도 참전하였다. 중국 주석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이는 한국 와서 전사했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는 공군 수색구조 헤레콥터 조종사, 해리왕자는 그렇게 무섭다는 아프칸 전투에 참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계 제2차대전 때에 대형군용자동차 운전병으로 참전하면서 일반 병사와 꼭 같은 조건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우리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받고 태어났다. 거기 충성하고 순종하면 그것으로써 하나님은 세계를 그분의 섭리 따라 움직여나가신다. 거기 고귀성이 빛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