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오늘의 중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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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04-10-15 17:1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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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미국과 중국의 수교로 개혁과 개방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중국이 20년이 지난 1992년도에 드디어 역사적인 한 중 수교가 시작 된 이래 13 년째를 맞이 하였다.우리는 다시한번 그동안의 중국사역을 회고해 보면서 21세기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교회를 진단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전세계의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죽의 장막인 중국의 문이 열려 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왔다.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어 때가 되매 하나님의 강권 하심에 따라서 중국이 개방을 결정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것이다.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인하여 전세계의 수많은 교회가 중국의 교회를 주목하게 되었다.공산주의 체재에 있던 중국인들이 개혁과 개방의 문이 열리자 그동안 억눌려 방황하던 영혼들이 진정한 영적인 자유를 갈망 하게 되었으며 정신적인 공황 가운데 있던중 교회의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물밀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밀려오기 시작 하였다.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갑작 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오히려 공산당 정부에서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교회의 크기에 따라서 채워지는 오늘의 중국교회를 바라 보면서 교회 성장학적 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교회성장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역기능적인 면이 돌출 되듯이 중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정부의 방침이 근본적 으로 신학을 발전 시킬 수 없는 상황 이기에 상대적 으로 열악한 환경 과 여건 속에서 출발한 신학교 이기에 지도자들의 자질과 역량이 상대적 으로 함량 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그런 가운데 보이지 않는 정부의 감시와 체재 속에서 중국교회는 생존전략을 위한 자구책 마련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삼자교회나 가정교회는 서로 양극단 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 이 연출되고 있다.이 틈바구니 속에서 고민하는 중국교회 목회자 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우리는 그저 묵묵히 먼발치 에서 바라볼 뿐이다. 오늘날 중국교회는 복음 선포가 다소 미약한 가운데 있지만 밀물처럼 몰려드는 성도들을 감당 하기에는 역부족 일 수 밖에 없다.그래서 자연적 으로 중국교회가 성도들의 수용문제를 고민 하게 되었으며 교회건축 문제로 많은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 이다.상대적 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중국 교회 자체의 역량 으로는 외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성전을 건축 하기가 용이 하지 않음으로 고민을 가지고 있다.중국 정부는 삼자원칙(자치,자양,자전)에 따라 삼자애국 위원회를 내세워 근본적 으로 외국인들의 종교 활동을 통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다. 외국인들의 선교활동 자체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불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성전 건축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다.그렇지만 성전건축을 위한 많은 물질을 보내 오지만 올바르게 사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보이지 않는 부작용이 많은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변질이 되고 있기 때문 이다.지도자들이 물질을 올바르게 관리 하지 못하는 관계로 불미스러운 일들이 지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에게'드려져야 함에도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태로 교회와 성도들이 지금 멍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선교비나 성전건축을 지원 하는 한국과 외국의 교회들이 마치 경쟁 이라도 하듯이 현지의 상황을 도외시 하면서 그것도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마구잡이 식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물질을 쏟아 붓고 있다.초기에는 그렇게도 순수하던 중국 교회의 지도자 들이 물질의 우상 앞에 하나 둘 무릅을 꿇어 가고 있다. 지금 한국이나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선교적 열심과 중국을 사랑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그 열정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그런 가운데 상대적 으로 생활 환경과 여건이 열악한 중국교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 으로 인하여 앞을 다투어 선교를 경주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런 틈 바구니 속에서 차츰 물질의 맛 을 알게된 교회의 지도자 들이 그만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돈을 제대로 관리 하지 못하고 제것처럼 사용함으로 여러가지 부작용을 연출 하고 있다는 사실 이다. 이제 중국교회가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연대를 살펴 봄으로 교훈을 삼을 수 있다.반면에 한국교회는 분별없이 물질을 사용 할 수 없는 것은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 이다.물질을 주는것 으로만 만족 하지 말고 사후 관리에 철저를 기하는 지혜가 필요 하다고 볼 수 있겠다.물질로 인하여 더 이상 지도자들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것이 중요 하다고 볼 수 있다.반면에 물질을 받는 중국 교회의 지도자 들은 그 물질이 성도들이 믿음 으로 하나님게 드려진 헌금 이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사실 이다, 지금 중국의 교회는 어떻게 해서라도 외국의 교회와 손을 잡으려고 노심 초사 하고 있다.외국의 교회와 손을 잘 잡기만 하면 성전 건축은 물론 일생동안의 생활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하고 있는듯 하다.하나님을 바라 보기 보다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볼모로 하여 지도자 교육 이나 선교사 훈련등 그리고 신학교육을 빌미로 하여 많은 헌금을 거두어 들이고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중국의 교회가 처음 수교할 때의 그 순수한 열정이 있는 모습으로 보여 지기를 기대해 보는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중국교회로 하여금 물질적으로 범죄 하지 못하도록 관리에 철저를 기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겠다.그리고 중국교회도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올바로 사용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물질의 우상 앞에 무릅을 꿇는 목회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지금 이라도 늦지 않는 것은 그래도 아직도 대다수의 교회들이 순결과 순수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 이다. 단지 물질주의에 오염되고 있는 교회들의 숫자는 전체교회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에 불과 하지만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의 타락이 가져오는 폐해는 엄청 나기 때문 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긴장을 늦추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이미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평생 목회를 성공 하고 강단에 내려온 거장들 가운데 물질주의로 인하여 무릅을 꿇은 자들이 많이 있는 까닭 이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교회의 분쟁 문제를 바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중국교회도 서서히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을 발견 하면서 우리모두 경계의 마음을 가지고 매진 하기를 기대해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