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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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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4-01-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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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의 원래적인 의미는 벽보(壁報) 또는 방문(榜文)의 일종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문제에 관한 의견이나 그 관련자들에 대한 비방, 대중들을 선동 동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커다란 종이에 써서 건물의 벽이나 게시판 등에 붙이는 것이다. 1980년도 후반까지만 해도 전국 대학에는 온통 대자보로 도배 할 정도로 민주 자유화를 위한 간절한 염원이 넘쳤었다.

 

작년 말부터 대자보열풍이 대학가를 비롯한 학부모와 교수 등 기성세대로까지 번져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나라밖에서까지 이어지기도 했지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제에 화답하는 대자보까지 붙는 양방향 소통도 있었다. 간단한 답문에도 우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짧은 축약의 메시지도 눈길을 끌었다. 이전의 일방적인 대자보와 차원이 다른 그리고 이런 호소문이 사회전체로 확산하여가는 소통의 창구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중고등학교의 대자보는 학교 측이 허가를 해주지 않아 곧장 철거되기도 했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시각에 따라 자칫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쟁이 될 수 있기에 민감하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논리로 단절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간에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소통의 계기가 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논쟁이나 분열과 좌우측을 나누는 갈등 확산의 도화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한국교회, 안녕들 하십니까.’

 

한국교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명동 입구에 대자보를 붙인다면, 어떤 답문이 붙을지 궁금하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답문을 쓸 것인지 상상해보라. 한국교회의 현실을 돌아보며 객관적인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모름지기, 어떤 사람이 교회 덕분에, 목사님 덕분에 너무도 행복합니다.’라는 답문을 붙였다고 생각하라. 그렇다면 찬성이나 축약형태가 아닌 반박문의 대자보가 80년도 민주화운동 때만큼이나 붙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장문의 대자보에는 한국교회의 교단 분열, 교회세습, 부도덕한 목회자, 성전건축, WCC 찬성 반대를 둘러싼 온갖 내용으로 도배할 것이다.

 

자랑스러워야 할 한국교회의 위상이 수치스럽다 못해 치부를 드러내지 조차 못 하는 비리의 온상이요, 일들로 가득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교계와 교파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물론 윗물이 흙탕물인 줄 알기에 한국성도들은 모두 고성능 정수기능 필터를 장착하고 있는 듯 윗물이야 맑든지 어둡든지 신경 안 쓴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정수기능이 약한 신자는 성직자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동 때문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떠난다. 한동안 1,200만 성도를 자랑했던 한국 교계가 700만이라는 절반에 불과하다. 이러니 한국교회가 안녕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교계의 원로나 어른이 본을 보이지 못해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교회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 가장이 병들어 누워있는데 자식인들 마음 편할 리가 없다. 어른이 안녕해야, 가족이 안녕하도록 만들어줘야 할 것은 성직자의 책임과 의무이다.

 

선교사님, 안녕들 하십니까.

 

선교사님들은 안녕할까?, ‘, 덕분에 안녕합니다.’라고 대답할 선교사 몇 명이나 될까. 모르긴 하지만, 어쩌면 한국교계현실을 비추어볼 때 안녕하지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이 앞선다. 뜻밖에 선교지에서 너무도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라고 답할 자도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오히려 타 문화권에서 진정한 복음의 진리가 살아 숨 쉬는 기적 같은 파노라마를 보고 있을 선교사가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안녕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안녕하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 국가적으로 절대빈곤기인 개발도상국에 있을 때, 아침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가 아니라 식사하셨습니까?’, 어르신들에게는 진지 드셨습니까?’였다. 식후에도 많이 드셨습니까.’라고 했다. 그냥 허기진 배를 채우도록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한 시절이 있었다. 선교지에서 안녕의 조건은 끊이지 않는, 중단 없는 선교비에 달렸다.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월20~30만원의 선교비도 널뛰기식으로 입금되었다가 한 달 건너뛴다. 그마저 있으면 보내고 없으면 안 보낸다.그렇다고 누구, 말 한 마디 않는다. 그러면서 마치, 세계 선교는 다 하는 것처럼 온갖 선전에만 열을 올린다. 자녀 학비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아이는 부모 따라 선교지가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며 온갖 마음의 상처와 피해를 입고 살아간다.

 

조지 물러의 기도처럼 오늘 쓸 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선교사가 얼마나 많을까. 육신이 병들어도 병원 갈 돈이 없어 못 간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듯, 한국교회 강단은 수 백 억 원대 성전건축에 성도들의 피땀을 짜내는 일에만 혈안이다. 파송 의미가 무색하리만큼 그들을 서자(庶子)취급하는 교회와 교단이 있는 한, 선교사도 결코 안녕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안녕할 수 있는 한국 교계의 제도적 개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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