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 의무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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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2-09-15 14:54본문
1907년의 일이다. 세계적인 교회의 지도자였던 존 모트라고 하는 사람이 전 세계를 그 세기 안에 기독교화할 수 있다는 확신은 한국교회를 보면 곧 가지게 된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사실 그 해에 한국교회는 엄청난 발전을 하였고, 그때부터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들 한국교회를 떠오르는 세계역사의 새로운 동력과 엔진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세계역사의 여명을 밝혀주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을 보라! 세계 도처에서 이런 환호가 창창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1905년 일제는 세계의 가장 거대한 고대 백인 기독교국가인 러시아를 1년 만에 괴멸시킨 일이 있다. 1905년은 그래서 서구 기독교문명의 종말이라는 비탄의 절규가 세계 도처 쏟아졌고 세계는 일시에 좌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한국에서 기독교가 1905-7년에 이르러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성령대부흥을 일으켜 그 실추된 기독교의 이미지를 사도적 교회의 눈부신 이미지로 비등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기독교 세계의 영광을 그전보다 더욱 드높여 기독교역사의 준맥을 역사의 주류로 부상시키고 있었다.
그 때부터 다들 한국이 세계 기독교의 주도세력이라고 떠들었다. 영국의 대영해외성서공회는 감격으로 그 연례보고서에 이런 글을 대서특필한다. 곧 중국이 앞으로 세계제국이 될 터인데 그 중국대륙을 복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차는 한국의 기독교회 밖에 없다. 이런 감격과 환호의 기사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계 최강의 기독교회이다. 단일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 하나만의 등록교인이 78만 명이다. 1945년 8월 해방 당시의 한국교회 교인이 46만 명이었다. 단일교회 교인이 한국 한때 전체교인의 2배 정도가 된 것이다.
세계 거대교회 50여개 중에서 그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다. 선교사들 파송 인원은 GDP 비율로 보아서 세계 최대이다.
서구의 고전적인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세미나에 4, 50 여명씩 앞 다투어 찾아와 두 주일간의 강의를 듣고 한국교회 돌아보느라고 내한한다. 벌써 그렇게 한지가 20년이 되었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한국교회의 사명은 더욱 빛나고 그 의무는 더욱 무거워지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눈부시게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역동성을 개발한 주체이다. 한국이 세계에 지금 높이 솟고 있는 그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활력 넘치게 전진해 나가게 하는 데 기독교의 공헌은 절대적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은 지금 줄잡아 세계 10위권의 국가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선 5등을 차지했다. 그것이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수가 된다. 당시 10등까지의 나라들을 보면 다 몇 백 년 그리고 천여 년이 넘는 나라들로 차있다. 그런데 한국은 6.25전란으로 국토가 전부 폐허가 되었다가 일으켜 세운지 겨우 50여 년 밖에 안 된 나라이다.
그런 동력을 제공해 준 주체가 바로 한국교회였다. 그 어간 몇 차례에 걸쳐 신앙부흥회과 엑스포를 수십 차래 열었다. 전국에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동력이 바로 한국 선진화의 원동력으로 송전되었던 것이다.
그 성령의 불길을 받은 인재들이 교회와 대학에서 사회에 나가 힘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영국의 유력지 <만체스터 가디안>은 한국교회가 이 세계의 종말이 오기 전 세계교회의 영도국이 될 것이라는 기사를 벌써 8년전에 썼다.
한국인은 원래가 세계적인 기질과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을 깔보기가 예사인 일본의 한 저명 대학교수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의 거대자원이다.
게이오대학교의 오코노기 마사오 박사는 한국인이 <글로벌 표준 유전자>를 가졌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러워서 한 말이다. 일본의 다른 거대 문인 시바 료다로는 인권이라든가 자유, 평화, 사랑이라든가 하는 실체는 기독교에서 밖에는 찾아보기 힘든 가치라는 말을 한 일이 있다. 그런 것을 일본은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한 말이다.
일본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려면 기독교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충고였다.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 조인을 받으면 한 말은 바로 우리 한국교회를 향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앞으로의 세계문제는 군사적인 문제도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문제라는, 그런 단호한 선언이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을 두고 한 말이 아니던가.
우리는 처음부터 세계의식을 그 활력의 비전으로 드높이고 있었다. 우리 교회가 1907년 처음 독로회를 조직할 때 그 회의장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소리 높이 부른 찬송가가 <저 북방 어름산과 또 태양산호섬>이다.
실제 우리 교회는 성령강림을 몸으로 경험한 1907년부터 계속 만주, 중국, 시베리아, 일본 심지어 하와이 멕시코까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었다.
우리 한국교회가 오늘의 한국을 일으킨 것이다. 그 영광은 한국이 스스로를 위해서 쓰고 누리라고 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쓰고 보태어 주기 위해서 주신 선물이요 은사이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세계를 위한 선교의 사명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특별히 지정하여 불러서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으로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하려 하심이 확실하다. 한 50년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버터필드라는 교수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들 곧 러시아나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에 둘려 쌓여 있는데도 지금껏 버티어 오게 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 일이 있다.
우리는 지금 최요한 박사님이 새로 창간하는 <국제선교신문>의 창간을 감격과 도전으로 축하고 격려하고 있다. 최박사님은 수십 년에 걸쳐 이미 중국 천지를 전방위적으로 휘젓고 다닌, 실로 바울과 같은 선교의 사도이다. 그가 중국 북방에서 추위를 견디어 낸 이야기는 바로 사도행전의 한 구절을 읽는 듯 가슴이 메이는 실화이다. 최근에는 동남아세아로도 그 발길을 옮겨 세계선교의 로도맵을 이미 거창하게 그려놓고 계시다. 그것도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그런 방대한 선교노정을 걷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최박사님에게는 이미 선교신학의 대계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그 이론은 현장에서 터득된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선교정책의 지역별 실용에 제공되어야할 귀중한 자원들이 된 것이다. 이런 자료들의 광활한 전파를 사명으로 알아서 이번 이런 선교신문 발행을 결단하기에 이른 것으로 안다.
이 신문은 또 여러 선교사역자들의 공동논단이 될 것이다. 현장의 문제들과 감격들, 간증들, 제안들이 이 문단에서 피로되고 공유될 것이다. 선교의 비전과 상호간의 공감과 연대감, 비전과 환상들, 다짐들, 그리고 인간적인 희노애락, 그런 것들이 서스름없이 그대로 진열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의 집안 뜰이 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한 권속을 이룰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