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해서라면 개가 되어도 좋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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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07-11 13:25본문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 21절 이하에 나온 이야기다. 한 가나안 여인의 사랑하는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다. 그가 예수님 앞에 달려 나왔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하고 부르짖었으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아이의 어머니는 유대인들이 개로 여긴 이방 여인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 여자를 보내소서.” 하고 여자를 멸시하였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귀신들린 딸을 위해서는 멸시천대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그를 시험하였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딸의 어머니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또 다시 기도한다. 그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도다.”고 하셨다. 자녀는 선민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개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개가 된 것이다.
사람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짐승취급을 받을 때 비참해진다. 사람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모든 희망은 사라진다. 절망케 된다. 덴마크가 낳은 우수 시인이요,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절망이라고 하였다. 히랍사람들은 인간을 ‘안드로포스’라고 하였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 이란 역시 오실 주만 바라보는 것이다.(대하 20:12)
‘오직’은 다만, 오로지를 강조한 말이다. 어머니는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알았다.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비록 개 취급을 받을지라도 귀신들린 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수치와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어머니는 자기를 개라고 말한 예수님을 향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다. 상위의 음식은 주인이 먹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개가 먹는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 상위의 음식이 아니다. 땅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아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이 정상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마귀는 빼앗고 죽이는 절도이고 강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부활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고상한 지식이 자신을 겸손하게 한다. 크신 주님 앞에서 자기는 작아진다. 존귀하며 높이계신 주님 앞에 서면 낮고 천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딸은 예수님으로부터 개취급을 받은 어머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은 자기를 개라고 해도 “옳소이다.”라고 말한 자를 향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
어머니가 건강하면 아이들도 건강하게 된다. 오늘날 흉악한 귀신들린 아이들이 많다. 2012년 11월 수업시간에 교사가 엎드려 잠을 자는 중2 여학생이 잠을 깨우자 일어나서 선생님을 향해 욕을 하면서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화장실 문고리를 빼서 집어 던졌다. 윤리교사가 역시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중2 남학생을 깨우자 일어나더니 볼펜으로 교사의 눈을 찌르려고 하여 급히 피해 봉변을 면했다. 아이들이 완악하고 강팍해졌다. 과다한 스트레스가 ‘욱’하는 감정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책망을 듣거나 학업성적이 부진하면 아파트나 한강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이런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개가 되어도 포기치 않는 사랑 실천이 있어야 한다. 종말의 징조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마 24:12-13)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시의 왕과 총독과 종교지도자들과 국민들로부터 개 취급을 받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수치와 고난을 참으셨다.(히 12:1-3) 오늘날 청소년의 학교폭력, 인터넷 중독, 자살, 가출, 미혼모, 자살 등은 흉악한 귀신들린 아이와 같다. 그들을 위해 개가 되는 부모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 희망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수치도 두려움도 내어 쫓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지금도 딸을 위해 개가 되는 어머니를 찾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