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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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12-30 15:40본문
왜 우리는 정치의 현장을 말하는가
이 신문에 정치에 대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거기 대한 일언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사회에 정치는 지나치게, 비율이 큰,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항상 신문의 전면(前面)과 전면(全面)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전부인 것처럼 매일 달아오른다.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 국민생활의 한 분야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는 특히 글로벌시대여서 시장이나 산업 경제문제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도 세일즈맨 구실을 하도록 되어 있는 판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나 통화 문제로 미국사회에서 그 운명이 도전 받고 있다. 우리가 글로벌시대에 뒤늦게 진입한 것도 그 어간 정치문제, 곧 민주화니 군사독재니 인권이니 하면서 시간을 딴 데에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그렇게 정치에 치우치나
일제 때에 일본중의원(국회)의 한 대의사(국회의원) 마쯔야마 쯔네지로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3.1운동 이후 한국에 자치권을 주자는 말을 한다. 조선총독부에 극비로 제안된 안건이었다. 한국인 대의사도 동경의 일본 중의원에 진출하게 하자는 파격적인 개혁안을 내 놓는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그 제안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곧 한국인은 역사상 언제나 정치문제가 그들 최상의 관심사여서 이렇게 자치를 맡겨도 저이들끼리 싸우다 그것으로 끝날 터이니 염려 없다. 이런 설명이 부기된다. 정치에 모든 것을 다 거는 나라가 한국인이라는 평은 그 잘 잘못은 고아간에 당황스런 일이다.
정치가 신문 전면에 매일 넓은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판에 국회의원들의 말씨는 더구나 여럿의 주목을 끌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입이 벌어질 정도로 저질이다 못해 언어의 마지막 한계에까지 가 있다는 느낌이다. 대통령을 귀태라든가, <그 X>이란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닌다. 투쟁적인 말투가 주류이다. 저질언어가 판을 친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고 말다. 그런 말을 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에 살면서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는 말인가.
연예인들의 막말
배우 겸 게임 리포터 변서은은 지난 12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철도파업에 대하여 “그렇게 팔고 싶으면 몸이나 팔어”란 발언을 한다. 가수 요조는 박대통령을 향해 “미친 X” 이란 글을 SNS에 실었다. 연예인들이 이렇게 정치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구나 이런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연예인의 언어는 더구나 정련(精練)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선에는 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술이란 것이 인간의 심미(審美)와 연결된 활동이 아닌가. 학문은 진리를 위해서, 도덕은 선을 위해서, 예술은 아름다움을 위해서 각각 활동하는 것이 아닌가.
언어는 존재이다
언어는 곧 존재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독일철학자 하이데커이다. 말이 그 사람의 존재와 같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나 존재는 그가 쓰고 있는 말로 다 결정된다고 하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그들 방송을 들어보면, 그렇게 악을 쓰면서 그렇게 가혹하고도 가공할 만한, 무서운, 격한 말들만을 골라 쓰고 있다. 그들의 실체가 거기 나타나 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곧 우리의 존재가 된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은 서술형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딘지 명령형이란 생각이 든다. 가령 <나는 학생이다>라고 하는 말은 <나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침 일어날 때에 오늘 몸이 힘들다고 말하면 오늘 몸이 힘 들어라 라고 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태초에 창조하실 때에 한 가지를 창조하시고는 언제나 꼭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을 하신다. 참으로 좋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좋아야 한다는 말로 보면 더 좋다.
좋은 말들은 쓰자
좋은 말을 쓰면 세상은 그렇게 실제로 좋아진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금강산이면 그 산이 아름답지, 어떻게 그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 더 아름다워서, 금상산 앞에 가서 보면서 <그림처럼 아름답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까닭이 있다. 그림은 좋은 것만 그리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길거리의 쓰레기를 그리지 않는다. 있어도 안 그린다.
우리 언어에 이런 규범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좋은 말을 쓰면 그렇게 된다. 정치에서도 좋은 것을 말하면 그렇게 좋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번 박대통령이 연설하려고 국회에 들어올 때에 야당 쪽에서, 한번 정략적으로라도, 한번 보란 듯이라도, 일제히 기립하고, 또 연설 곳곳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면, 그날부터 한국정치가 일대변화를 일으켰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런 것을 한번 해 볼 수 있는 정치 감각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약속된다고 믿는다. 그런 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자식에게 칭찬하고 나무라는 것은 부모의 자세의 문제이다. 한번 실제 칭찬할 만한 일을 보고 그것을 짚어서 진실하게 일러준다면, 그날부터 그 자녀는 다른 세상을 보고 환호로 살아갈 것이다. 더 자주 부모를 만나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갈등과 중오만 있으라는 법이 없다. 피차에 한번이라도 <그것 대단히 훌륭한 것>이란 말을 한번 시작해 보자.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개벽할 것이다. 전면에 선 그런 사회집단이 먼저 그런 일을 착수해보자. 함성과 감격이 파동 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