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선교가 따로 갈 수 있는가?(2)
본문
선교는 목회의 일부인가? 목회가 선교의 일부인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국내목회자와 해외선교에 생애를 건 선교사가 열심히 자기주장을 펴며 토론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이 질문주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선교와 목회를 따로 생각하는 사람은 목회나 선교나 어느 하나도 온전하게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3년간이나 배웠다. 성령의 충만함도 받았다. 능력 있게 복음을 전파하여 하루에 수천명씩 회개하고 결신시켜 예루살렘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아직도 변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깨달은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복음이었다. 유대중심적 이기주의의 깊은 뿌리를 버리지 못했다. 즉 선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선교비전,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이것은 알지 못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예수님의 결론적인 지상명령,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을 알지 못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게 하시는 사건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해하셨는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새로 바울을 선택하셔서 세계선교를 맡기신다. 충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 바울은 베드로와 다른 점이 있었다.
바울은 전문적인 선교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는 교회와 목회를 결코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얻은 권위를 가지고 직접 선교현장사역에 뛰어들 수도 있었지만 안디옥교회의 목회사역에 적극 참여하였고 결국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나간다. 그리고 안디옥교회만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선교사역의 내용을 보면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목회자를 길러 세우고 그 목회자와 교회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목회에 소홀함이 없다. 그러한 사역을 마게도니아와 로마와 스페인으로 확장해가는 세계화의 비전을 품고 선교를 확장해 나간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보자. 바울이 했던 사역은 목회인가 선교인가?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기 왕국을 이루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고 선교사들에게는 동냥 주듯이 선교비를 보내면서 그것을 선교하는 교회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들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냉정히 살펴야 할 것이다. 바울 앞에서도 자신을 정말 선교사라고 내세울 수 있는가? 선교지에 가서 애써 자기 교회 하나 세우고 그 목회에 파묻혀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현지 목회자를 길러내고 그 수준을 높이고 자립시키려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이번에 약 일주일간 목사님 세분이 함께 태국 북부지역을 다녀왔다. 네 번째 가는 현지목회자들을 위한 체계적 훈련과정이다. 사람들을 호텔에 모아 위로와 쉼을 주며 부흥회도 겸하는 이벤트가 아니고 지역 교회 시설을 이용하여 그 교회 성도들의 헌신을 얻어 최소의 경비로 실제적이고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지속하는 선교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작은 사역이지만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어여삐 보시고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셔서 활동하심을 보여주셨다. 중국 가정교회의 세계를 향한 선교 움직임, 동남아 화교기업인 성도들의 선교를 위한 큰 움직임, 미국 선교팀의 큰 시설 투자를 통한 선교 프로그램의 시동... 등등 밖에서 보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선교의 역사가 불교국가의 북쪽 한 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며 우리에게 큰 하나님의 비전과 역사하심을 보게 하셨다.
세계복음화의 올바른 선교비전을 품고 목회를 하는 사람과 지역목회 성공에만 몰두하며 생애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과... 세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과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주시는 복과 은혜가 다르지 않겠는가?
“선교의 중요성은 알지만 여건이 안 되어서...” 이런 생각은 현실적으로 맞는 것일 수 있지만 동시에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음도 사실일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온 땅을 정복하라는 비전과 사명을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도, 요셉에게도,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부르신 모든 사람들에게 시대에 관계없이 세계복음화를 통한 생명구원의 비전과 사명을 주셨다.
새삼스럽게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나는 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는가?
(임천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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