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나타남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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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시아는 불교가 생활화가 된 나라들이다. 얼마 전 태국을 갔을 때 한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공항에서 “사와디캅” 합장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는데 다소 나에게 생소한 문화라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합장은 불교에 스님이나 철저한 불교인이 아니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묵었던 숙소에서 있을 때에 TV 뉴스시간에 아나운서가 먼저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네고 뉴스를 하는걸 보면서 이들에게 단순히 불교를 종교라고 말하기보다 생활이라고 말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불교가 몸에 밴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든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성도들과 국민들의 삶속에 몸에 밴 것처럼 생활화 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한편으로는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지만 그런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기도후의 삶은 기도 내용과 상관이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신앙생활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생활신앙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나는 몇 번의 태국 세미나 인도를 통해 어떻게 하면 불교가 생활화된 저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기도한다. 예를 들어, 교회당 안에 국왕과 왕비가 나오는 달력이 가는 교회마다 부착되어있다. 목회자의 가정에 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목사인 나는 성화나 성경말씀의 달력을 사용해야할 것 같은데 저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나는 매일의 기도와 말씀 묵상 가운데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로 생활화된 저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기독교의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지낸다. 바울이 전한 천국복음이 3세기가 지나지 않아 국교로 받아드리게 되지 않았는가? 과연 오늘날 교회에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는 정도가 아니라 불신의 문화를 기독교의 문화로 변화시킬만한 능력이 있는가?
바울의 복음 사역을 보면서 결코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님을 성경을 통해 너무나 많이 확인하게 된다. 나는 80번 정도의 해외 집회를 인도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말로만 전해지는 복음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를 동반해 말씀을 확실히 믿게 하는 집회를 열망한다.
그동안 선교하러 갔던 나라들마다 신앙의 자유가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선교하는 동안 말씀과 기도가 병행된 사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통 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한 도시에 가서 4일 동안 16시간의 강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저들에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하신 성령의 나타남과 역사를 소망하면서 기도한다. 한 국가에서는 아파트에서 교육을 하는데 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옆집에게 들리기 때문에 참 곤란했다. 그래서 항구도시니 배를 빌려 바다 한 가운데 가서 기도회를 하려고 하니 현지 선교사님이 말린다. 하지만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가 박해를 뚫고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나는 주님께 저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울며 기도하는 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아파트를 무너뜨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12명의 현지 학생들도 그때에 얼마나 크게 천둥을 치는지 다 놀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도회를 하라는 사인으로 알고 2시간 동안 오로지 기도회를 인도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다. 하늘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너무 멎진 하나님이 아닌가?
그 이후 몇 차례 더 방문하면서 하나님 계속 하늘을 움직이는 하나님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뭔가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적은 소리에도 강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적은 소리로 기도하는데 옛날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 같은 역사가 나타나도록 허락하셨다. 숨어서 하는 곳곳마다 역사를 허락하셨다.
태국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나에게는 물을 만난 고기같이 좋다. 세미나 때나 저녁 집회를 인도할 때 바울을 통하여 나타나시던 성령님의 나타남을 사모한다. 그렇지 않고는 불교가 몸에 절여있는 저들의 삶을 예수쟁이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고 잠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친 시간만큼의 기도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선교를 다시 한 번 보라.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선교의 현장을 찾는 목회자들은 많다. 그러나 오순절의 역사를 일으키겠다는 불같은 열정으로 선교에 임하는 분들은 지금까지 내가 갔던 선교의 현장에서는 소수였다. 선교 현장이 숨어서 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도 말이다. 성경을 가르쳐 머리만 키워놓는 선교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는 증인을 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가는 마가복음 맨 마지막 절에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막16:20]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10일 동안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게 하셨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먼저 성령을 받게 한 후[행19:6] 3년 동안 성경을 가르쳤다.[행20:3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측량할 수 없이 크다. 가르쳐 받게 하기도, 받고 가르치기도 한다. 순서는 다를 수 있어도 성령 충만 과 말씀 충만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선교의 현장이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일터가 되기 위해 조용히 무릎을 꿇어야겠다. 꿇어 넘치는 뜨거운 가슴으로 선교의 현장으로 달려갈 때 성도들이 드린 선교의 헌금이 가치 있게 쓰여 지게 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보람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나는 선교의 현장을 나가기 전 이번 선교가 성령님의 나타남을 사모하는 선교가 되기를 열망한다.[고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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