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중시하는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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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무척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책상에 앉아 얻는 지식도 귀하지만 몸으로 부딪치며 얻는 지식이 더 가치가 있음을 경험하고 나서 부터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디서든 현장에서 찾고 얻는 지식을 귀하게 여깁니다. 정부의 각 관료들은 좀 더 현실적인 정책들을 내놓기 위해 책상에 앉아 정책을 만들고 보고 받지 말고, 현장을 찾으라고 요구받습니다. 재벌 총수들도 회사의 직원들에게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고 말하며 현장을 중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학교도 학생들의 지식을 산학 협동이라는 말로 살아있는 지식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선교현장을 살펴봅시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현장에서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현장중심적인 사역을 하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교육을 받는 학교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모이기 위함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교회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말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선택할 때도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봉사나 헌신을 했는가를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에 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새신 자를 얻고, 양육했는가를 중심으로 일꾼을 선택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회 안의 중직 자들은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풍조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 IMF관리 체제로 들어가면서 무수한 사무직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고, 그 때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외환 위기에서 벗어난 지 15년이 넘은 지금에도 듣게 됩니다. 반면 현장에서 일하던 기술자나, 기능직에 있는 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재합니다.
교회도 이런 현상들이 너무나 팽배합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들 중 현장에서의 쌓은 경험이 교육을 받은 시간들과 비교해볼 때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장에서 전도하기 위해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신학을 위한 신학을 하기 때문에 쌓은 지식이 현장에서는 거의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신학을 하고 목회자로 사역하다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를 목회 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보게 되는데 이것은 현장의 중요성을 무시한 신학의 폐해를 경험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현장은 어떨까요? 선교사로 나가기 전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훈련해야할 것은 전도 훈련입니다. 선교사는 현장에서 전도의 전문가가 되어서 선교지로 파송 받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신학과 선교 학을 아무리 가르쳐 놓은들 현장에 나가 그 지식을 적용하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지 않는다면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는데다 그 교육은 죽은 교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선교역사를 보면 한국에 처음 오신 선교사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1:1 전도에 목숨을 걸었으며 자신들처럼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습니다.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교지의 목회자 양성은 한 사람의 성도를 구원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짧은 사역을 마치고 떠나면 누가 주님의 사역을 이어 받겠습니까? 아마 주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시하셨지만, 12명의 제자들을 전도자로 양육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현장에 내보내 주의 권능을 더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어 더욱 활발히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복음전파의 현장을 갖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즘도 전도가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전도가 된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의 현장으로 나가면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나가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기도와 말씀 읽음과 묵상, 그리고 전도의 현장을 소유한 교회와 선교사라면 반드시 부흥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도자가 활동하는 현장에서는 더러운 귀신이 쫓겨 가고, 모든 병이 고침 받고,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이 여기 있습니다가 됩니다.
1904년의 웨일즈의 부흥과 1905년 인도의 묵티 부흥운동, 그리고 1907년의 평양의 부흥운동 같은 부흥 운동이 한국 땅과 온 열방 가운데 일어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잃은 양이 있는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 교회와 선교 현장이 깨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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