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 현장에서의 교파 이식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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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3-10-15 14:51본문
오늘날 한국교회 선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물음에 답은 각자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저는 선교의 현장을 보면서 그 중 대표적으로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교파주의고 또 하나는 개 교회주의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그 문제의 뿌리가 굉장히 깊기 때문에 단순히 선교사님들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한국의 선교 초기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교파주의 선교의 흐름을 살펴봐야 합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천주교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천주교는 국가의 권력에 편승하여 선교하려 했던 모습이 강했던 터라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천주교의 선교방식이 잘 맞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선교방식보다 그 이후에 시작된 개신교의 교파선교는 선교가 식민제국주의 앞잡이거나 동맹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복음에만 집중했기에 좀 더 수월하게 한국에서 선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삶속에 들어가 신학이 아닌 삶을 통해 순수하게 복음을 전파하니 백성이 따르게 되었고,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의 많은 어려운 부분에 항상 미국 선교사들이 같이했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의 각 교파에서 파송되어진 선교사들은 교파를 넘어서는 하나의 한국교회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분명 있었지만 본국의 선교정책으로 하나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교회는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지 교회였지, 한국인의 한국교회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토착화에 실패하면서 교파를 이 땅에 뿌리 깊게 파놓은 것이 오늘날 돌이킬 수 없는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물론 교파주의가 각 교파 간에 선교의 열정을 이끌어내어 선교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긴 했습니다. 신학교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의 숫자도 확연하게 늘어 확장일로였으니 누가 보더라도 선교가 잘 되었다고 하지, 안 되었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국교회는 늘어나는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각 교파, 교회에서 우후죽순으로 신학교가 설립 되었고, 단 기간에 목회자가 양산되면서 한국교회의 쇠락의 한 원인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선교의 현장을 한번 봅시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도 자주 선교 현장을 찾는 목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면서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한 선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먼저 땅을 사는 것이고, 다음은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현지의 목회자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관리할 능력이 없는 현지인들에게 는 교회 관리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교회를 관리할 사람은 준비가 되었는데 현지 교회를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본이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때 가장 손쉽게 선교 현장의 교회를 운영하는 방법은 한국 선교사들의 책임 하에 운영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선교헌금을 보낸 한국교회가 주도권을 갖게 됨으로 운영하기에 여러 편리한 점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교방식으로 인해 개교회주의 선교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교파난립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한국교회가 또 교파 이식의 선교를 해야 하느냐 말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 교회의 문제고, 선교사들의 문제고 피선교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선교자원의 낭비와 효율성에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교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들이 10명만 모이면 양질의 신학교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열 명의 선교사가 각 교파에서 세운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을 그대로 전한다면 복음 안에서 하나로 될 수 있을까요? 한 교파의 목회자가 한 지역에 열 명이 있어 하나 되는 것도 어려운데, 각자의 신학노선을 갖고 있는 각 교파의 신학으로 훈련받은 선교사들이, 그리고 각 교단과 교회의 지원을 받는 선교사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반드시 지금 현재 한국교회 선교의 모습 속에서 빨리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는 선교로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속한 일꾼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명 자들이 아닙니까?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마귀에게 잡힌 인간의 자아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강력하게 다가옴을 느낍니다(마16:24-25).
누구를 위한 선교입니까? 각 교회입니까? 각 교파입니까? 아니면 선교사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선교의 도구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써주심에 감사하고 오직 예수 이름만이 남는 선교로 돌아가야만 교파주의와 개 교회주의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자로 키우는 것에 집중 되어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도 심심찮게 교회 예배당이 경매에 내몰리고 있음을 봅니다. 예배당의 존재 이유는 그 안에 성도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 키우는 선교, 영적, 인적, 물적으로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선교여야 복음을 토착화시키고, 신앙을 자립시켜 또 그들이 선교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의 숫자가 많아지고,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자신들이 예배하는 예배당을 더욱 잘 짓고자 하는 마음이 들것입니다. 건물을 짓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예배당 몇 개 세웠다는 것도 선교의 현장에서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키웠느냐 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요구는 제자 삼는 일보다 결코 앞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