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 구분하는 것이 성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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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제일신문 기자 작성일2014-06-13 15:5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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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합심기도하고 있다. ⓒ신태진 기자 |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회장 김명혁 목사)가 13일 오전 7시 성남시 분당한신교회(담임 이윤재 목사)에서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6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개최했다.
사회를 맡은 회장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는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탈을 쓰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를 벗어버리고 신앙의 선배인 주기철, 손양원·한경직 목사님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며 “땅끝까지 선교하기는커녕 가까운 북한과 일본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자”고 했다.
박용규 교수(총신대)는 ‘남강 이승훈과 고당 조만식의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교회의 기독교민족운동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남강 이승훈과 고당 조만식이다. 신민회, 105인 사건, 3.1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은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나라 사랑의 본보기였다”며 “이들에게 찾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측면은 바로 기독교 신앙과 민족애의 조화였다”고 했다.
이승훈의 생에 대해서는, “민족의식과 기독교 신앙이 하나로 통합되어 표출됐다”며 “안악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됐고, 105인 사건으로 5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4년간 옥중생활을 경험한 것이 말해주듯, 철저한 신앙의 사람이면서도 윤경로가 말한 대로 그의 삶 전체가 민족이 당면하고 있던 역사적 과제 앞에 실천적으로 참여했다. 그 구체적인 사건 중 하나가 신민회 활동으로, 그는 평안북도 신민회 조직의 전적인 책임을 맡았다”고 했다.
조만식에 대해서는 “조만식은 산정현교회 교인으로서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풀려난 후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섰다. 이 사건은 기독교인들의 애국애족운동의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며 “고당은 기독교를 단순히 영혼 구원을 지향하는 종교라는 데 국한시켜 놓지 않고 사회 속에 진리를 구현하는 산 종교로 부각시키는 데 힘썼고, 기독교 정신을 민족 부흥운동에 이식시키고자 노력했다. 또 물산장려운동은 3.1운동 이후 민족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포의식과 민족의식을 강하게 심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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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박용규 교수, 이상규 교수, 임희국 교수, 연규홍 교수. ⓒ신태진 기자 |
이상규 교수(고신대)는 ‘주기철 목사와 민족주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소양 주기철은 민족운동의 정신적 보루였던 오산학교 졸업생으로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깊었다. 그러나 소양은 민족독립이 교회가 수행해야 할 주된 과제이거나 사명일 수 없다고 인식했다. 민족주의적 동기가 신앙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전임자와는 다른 순수한 목양의 길을 추구했다”며 “그는 조국의 현실에 무관심하지는 않았으나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민족 문제에 접근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복음과 그리스도에 충성하는 것이, 민족의 현실을 타개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양의 목회와 설교, 신사참배 거부가 민족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임을 암시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도리어 그의 신념체계, 행동양식을 결정했던 것은 신앙적 동기였다. 따라서 소양의 신사참배 반대와 저항을 민족주의적 동기로 관찰하는 것은 그의 신앙적 의의 추구와 그 고난의 여정을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결과가 된다. 그가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것은, 그리고 그 결과로 순교에 이르게 된 것은 민족적 울분이나 반일적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신사참배 강요가 (십계명)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주기철 목사는 신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과 순수성을 훼파하려는 외부적인 압력에 대해서는 자기 해체적인 싸움을 전개했지만, 동시에 그는 가난한 영혼들을 감싸안고 목양하며 건실한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해 가고자 했던 영혼의 목자였다”며 “그의 삶과 설교, 저항과 순교의 가장 주요한 동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그것이 그의 저항과 순교의 동기였다. 비록 그는 민족의식과 민족주의적인 시대정신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았으나, 그의 사회활동을 움직였던 신념은 하나님의 계명에서 충성이었다”고 밝혔다.
임희국 교수(장신대)는 한경직 목사의 ‘기독교신앙과 민족주의’에 대한 강연에서 우선 “한경직 목사의 유고와 유품자료를 정리한 김은섭 목사에 따르면, 한경직 목사가 노년에 살았던 남한산성 우거처에 들어서면 은빛 십자가와 ‘나라 사랑’을 새긴 작은 돌이 방문객을 맞았다고 한다. 그의 침실 장롱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었는데, 그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침대 곁에 있는 십자가와 장롱에 붙은 태극기를 가장 먼저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한다”며 “‘십자가와 태극기는 한경직의 삶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두 상징’이라는 것이 김은섭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제가 한국을 식민 지배하던 수십 년 동안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서러움과 슬픔을 뼈저리게 경험한 한경직은 ‘조국이 잘 돼야 우리가 다른 나라에 나가 살아도 대접받으며 살 수 있다. 나라가 없으면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훈계했다. 그런데 또한,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 그 신앙 정신으로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정의와 공의가 승리하고, 자유 민주주의가 실행되며, 민족이 통일되는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라’는 당부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임 교수는 “한경직 목사의 애국애족 정신은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어진 적이 없었고, 기독교 신앙정신으로 민족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실천하도록 가르쳤다”고 밝혔다.
연규홍 목사(한신대)는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일제하 고난받는 민족의 구성원이었던 강원용 목사는, 민족의 해방을 바라던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그는, 민족의 해방보다 더 큰 인간의 해방을 바라는 에큐메니스트가 됐다. 이러한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를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라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강원용 목사는 민족 분단 현실이 한국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양극화와 함께 민족 공동체 안에 위정자와 국민 대중, 농촌과 도시, 부유층과 빈민층, 경영자와 근로자, 세대간의 균열과 마찰을 심화시켰다고 봤다”며 “그는 민족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민주화가 곧 민족 분단을 극복하는 평화통일의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연 교수는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는 침략적 민족주의나 저항적 민족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시대를 여는 민족의 지도이념이다. 그는 민족지상주의자나 민족우월주의자가 아니었다. 민족과 민족사이의 대립과 갈등에서 고난받는 민중에 관심한 그의 민족주의는, 인간화와 평화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라며 “강원용 목사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세계와 공존, 번영하는 통일을 이루는 민족주의만이 곧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확고히 믿었다”고 밝혔다.
발표에 대한 응답은 주기철 목사의 손녀사위인 이윤호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가 했다. 손동희 권사는 “어떤 언론에서 손양원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를 ‘종교적 한계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가장 적극적인 민족주의적 저항이었다’고 보도했는데,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손양원 목사의 신사참배 거부는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함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 오직 복음 전도의 길을 걸은 것이지, 민족주의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애국자 손양원이 아닌, 순교자 손양원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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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김명혁 목사, 김영한 교수, 방지일 목사, 림인식 목사. ⓒ신태진 기자 |
신학위원장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는 발제에 대한 종합적 논평을 전했다. 김 교수는 “발표자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 견해이다. 성경은 민족애, 민족 정신을 말하고 있으나, 민족주의를 가르쳐주고 있지 않다. 민족애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듯 타민족도 존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일 수 있다. 이에 반해 민족주의는 대체적으로 배타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타민족에 대한 공격적 성격을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정의(justitia omnibus)일 수 없고, 따라서 보편적 가치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18세기 이후 민족주의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주의적 파시즘체제로 변질되어갔다. 지나간 역사에서 얻는 분명한 사실은, 민족주의는 보편적 가치일 수 없고 민족을 이데올로기화 할 때는 폭력성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나치스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자기 민족을 절대화함으로서 타 민족에 대해 폭력을 정당화했다. 20세기 말 동유럽의 공산주의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의 민족분쟁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각 발제에 대한 논평을 한 후, 마지막으로 “앞서가신 신앙의 선배 여섯 목사님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훌륭한 점은, 오늘날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돈, 명예와 권력 같은 세속적 가치보다는 하나님의 영광, 민족 사랑과 민족을 위한 희생, 섬김, 온유와 겸손 같은 기독교적 가치를 더 추구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후배들은 선배들의 위대한 덕과 정신을 본받으면서 저들이 남겨준 위대한 신앙과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회 전 기도회에서 방지일 목사(자문위원/영등포교회 원로)는 ‘창조주로부터 받은 인권(人權)’(창2:15,19)이라는 주제의 설교를 통해 “창조주께서 독생성자를 보내주셨으니, 우리는 구원받은 민족으로 주 예수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까지 자신을 늘 갈고 닦으며, 열심히 전진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창조주께서 주신 그 크신 주인의 권을 누리는 자들이 돼야 하겠다”며 “성삼위의 크신 역사로 지구촌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윤재 목사(중앙위원/분당한신교회), 허문영 박사(남북협력위원장/평화한국 상임대표), 유관지 목사(중앙위원/감리교북한교회연구원 원장)는 기도를 인도했고, 총무 이옥기 목사(UBF 총무)의 광고와 림인식 목사(자문위원/노량진교회 원로)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