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선교가 따로 갈 수 있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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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4-06-26 14:11본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민족은 아주 적은 인구를 가지고서도 세계의 경제를 휘어잡고 노벨상의 삼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핍박 받고 고통 받는 역사를 지니게 됨은 무슨 이유일까?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 한마디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오해한 착각의 결과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닌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는 자신을 내어놓는 헌신과 열정,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어갔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을 벗어나려하지 않았고 결국은 강제로 흩어짐을 당하게 된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수님은 지상사역을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결론적인 지상명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에는 분명하게 선교와 목회가 함께 들어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유대인만의 교회부흥을 위한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요 성령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많은 한국의 교회들은 자기울타리 목회에서 과연 벗어난 것인가? 선교현장에 가보니 한국의 선교사들이 참 많이 나가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선교현장의 필요에 적절히 반응하는 효과적인 전략적 선교가 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해결 되어야 할 문제점들을 선교사 자신들이 느끼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그들을 파송한 한국의 교회가 해결해야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로 판단된다. 아마도 목회의 본질부터 바뀌어야 선교도 바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이것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히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시급하고 중요하게 관심 가져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 특히 지도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국내 목회현장이나 선교지 현장에나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이 문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어쩌면 다 아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다.
신약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와 바울이 공통적으로 깨닫고 주장한,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마16:16, 행9:20-22) 이 사실에 신앙의 뿌리를 두고 오직 예수를 믿는 교회라면 목회와 선교의 본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는 분명하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초대교회의 힘은 무엇이었는가? 교회가 유대 종교, 로마의 힘, 헬라의 문화를 이겨낸 그 파워가 어디서 나온 것이었는가? 초대교회의 사도들만이 아니라 일곱 집사들의 수준만 눈여겨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출신이나 사람 자체가 능력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또 그들의 한 일은 단순하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했다. 그것만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이루어진 것은 성령의 역사였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성령의 역사는 없다는 사실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고,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지만 오직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제대로 깨닫고 그리스도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을 통해서만 크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목회와 선교가 온전히 그리스도를 회복하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의 교회가 초대 교회와는 달리 무력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광고인이 아닌, 그리스도에 목숨을 건 그리스도의 증인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교회는 결국 고후5:14-18에 있는 말씀대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도와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도록 하는 일이 본질적인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선교도 그 연장선에서 될 것이다. 위의 본문에서 17절이 되면 18절이 되는 것이다.
(임천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