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선교의 본질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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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14-06-26 14:17본문
이 글의 제목 자체가 필자에게는 매우 부담스럽고 무거운 제목이다. 이 제목에 걸맞은 글을 쓸 만한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아느냐고 뭇는다면 더 당황스럽다. 사실 선교학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 용감성 하나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면 목회와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데 그것을 회복하자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사실은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들고 나오고 싶은 것이다. 너무 식상한 주제라고 외면당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대상은 그런 분들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답인 것은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현장의 목회자나 선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필자는 이 주제에 관련하여 절실했던 경험들을 조금 지니고 있다. 첫째로는 나 자신이 소위 모태신앙을 가지고도 40여 년간의 신앙생활이 너무나 무력하고 무가치한 삶이었다. 그것이 늘 갈등이었는데 뒤늦게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깨달아지니까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용기 없는 내 안에서도 기적이라고 할 만한 삶의 혁명이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목사인 아버지의 목회를 보면서 나는 결단코 목사는 할 수 없다고 결론 내고 먹고살기에 가장 쉽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약사가 되었었다.
그런데 평생 먹고사는 일에는 걱정이 없는 약사직업을 포기하고 56세에 절대 못한다고 생각했던 목사가 된 것이다. 한 술 더 떠 약사해서 번 돈을 몽땅 어느 선교사에게 다 줘버리고 빈손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두 번째는 평신도로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면서 중학생 때부터 교회 봉사는 항상 성경공부 교사였다. 초, 중, 고, 대학 청년부까지...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내가 그렇게 성경을 잘 가르치는데도(?) 배우는 사람들이 도무지 변화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변화가 일어나는 성경공부의 비밀을 깨달은 것이다. 말씀으로 변화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세 번째로는 절대 자신 없었던 교회개척을 하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빈손 가지고 별다른 방법도 프로그램도 없이, 한 것이 있다면 성경공부만 했는데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매우 건강한 교회와 목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정말 삶이 변화되는 성도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의 선물이다. 네 번째로는 이제 목회일선에서 물러나서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염려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평생의 경험을 바탕 삼아 ‘PJC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국내 지역 목회자들과 해외 여러 선교지의 현지목회자들을 섬기는 사역으로 더 바빠진 삶이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크게 성공하신 분들에게는 정말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불가능이 가능해진 기적의 역사들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원동력이 된 공통 단어를 하나 발견한 것인데 그것이 ‘그리스도’ 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40년 만에 깨달으면서 자신 안에 혁명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깨달은 이 사실을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었을 때 그도 인생이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옛날의 나처럼 그렇게 교회만 다니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사명감에 불을 붙여주신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현장을 방문했던 길에 한국 선교사 대여섯 분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었다.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 그리스도의 복음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 참석했던 현지신학교 학장으로 있는 선교사가 갑자기 내일 아침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해서 예정에도 없는 2시간의 특강을 한 적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카톡 메시지가 왔다. “목사님,.. 오늘 그 성경공부 세 번째 날인데 이렇게 성경구절을 빼곡이 찾아 적어온거 있죠... 교회도 나가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싶다네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어요...” 우리교회의 젊은 자매인데 교회에 나가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을 놓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너무 놀라워서 카톡으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한 이런 생명운동으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 목회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일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