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교는 제자 세우는 것 -국제선교신문 발행인 최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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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제자 세우는 것
국제선교신문 발행인 최요한 목사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제반 여건이 갖추어진 나라가 한국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국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다.”
최요한(가명) 목사가 그의 책 <중국사랑 영혼사랑>(쿰란, 2011년)에 쓴 글이다.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던 해에 중국 선교의 비전을 갖고 10년 동안 비거주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2002년에 중국으로 들어가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제자
양육에 힘썼다. 15~20명의 헌신자들을 2년 동안 합숙하면서 길러낸 제자가 2009년 말 중국을 떠나 올 때까지 350여 명이 되었고, 그들은
현지에 교회를 세워 목회를 해나가고 있다. 예수님의 선교 방법은 ‘제자를 세우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이루어낸 열매다.
이제 한국
땅에서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를 세워 새롭게 목회를 하고 있는 최요한 목사를 명동에서 만났다.
믿지 않는 가정의 첫 열매되어
최 목사는 믿지 않는 가정의 첫 열매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울릉도에서 2남 3녀의 맏이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교회에 나갔다. 누구의
인도도 없었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스스로 찾아간 것. 학교를 졸업하고 울릉교육청을 시작으로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15년을 살았다.
1979년 서울로 올라와 서울시교육청, 강남교육청에서 일하면서 동생들을 하나씩 서울로 불러올렸다. 맏이로서 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지만, 그 동생들은 지금 가장 큰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고 있다.
평범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역사가 일어난 것은 1990년.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후부터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노방 전도, 병원 전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신학도 공부했다. ‘광주’하면
전라도 광주만 알던 그가 경기도 광주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5년쯤 되자 부지를 마련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그를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다. 이미 목회를 하는 틈틈이 비 거주 선교사로 중국을 오갔지만 가족과 함께 거주 선교사로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결단이 필요했다. 순종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어려움
없이 한 곳에 머무르면서 사역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매 순간이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이었을 터. 오직 말씀과 기도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3시면 눈이 떠졌다. 3시간 동안 기도로 매달렸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였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한순간에 일이 틀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사역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또다시 한국으로 부르셨다.

서울의 금싸라기 땅 명동. 있던 교회도 떠나려고 하는 판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얼핏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최 목사가 굳이 명동을 고집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명동이 주거지가 아니라 교회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계산법으로는 승산이 없는 게임이지요. 이곳에서 교회를 일으킨다면 이는 인간 최요한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임을 증명하는 게 아니겠어요?”
한류韓流가 아시아, 유럽은 물론 남미까지 퍼져 가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 서울의 중심 명동에 교회가 새롭게 자리를 잡고 다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간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최 목사로 하여금 명동에 자리 잡게 했다. 물론 큰돈을 들여 예배당을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다. 쾌적한 공간을 주일 예배 장소로 빌려 2011년 1월 창립 예배를 드렸다. 말씀에 바로 선 교회, 선교를 지향하는 교회로 주일 하루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명동교회를 세운 또 하나의 이유는 말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교회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 말씀에 은혜 받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교회가 되고 싶은 것이다. 설교와 교육이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설교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 하지만 창립 1년 만에 성도 수는 30명으로 늘었다. 주거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인천, 부천, 일산 등 원거리에서 오는 교인들도 많다. 성남에서 오는 한 교인은 “말씀 때문에” 차를 몇 번 갈아타면서도 이곳으로 온다고 말할 정도.

| ◇ 러시아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최 목사는 “하나님께서 부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한 원리이지만 그것을 믿는 믿음은 결코 작은 믿음이 아니다. 이 믿음은 내주內住하시는 성령의 힘을 의지할 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 목사는 “성령이 근심하게 하는 일을 하지 말 것과 자기를 부인할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을 강조했다. 그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예를 들어 “자꾸 성령을 탄식하게 하면 사울 속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듯 우리에게서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게 된다.”는 것. “하나님의 영이 속에 들어와 계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므로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과의 코이노니아와 펠로우십Fellowship 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배우기가 어렵다. 지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신다. 심지어 생활의 지혜, 말의 지혜까지도.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는 지식 정보화시대에서 소셜 드림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요.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꿈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체는 꿈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한국 교회가 쇠퇴해가는 이유 중 하나가 말씀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 목사의 분석이다. 성경을 지식으로 가르치면 성령의 운동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 말씀을 말씀으로 풀이하고 성경을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성경을 백 번 통독해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지 않으면 심오한 원리를 깨우칠 수가 없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기도를 통해 성령과의 교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 히브리서의 말씀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2)

| ◇ 최 목사의 체험이 녹아 있는 저서들 |
선교사가 선교 현장을 떠나면 후원금을 끊는 것이 일상적 관례다. 최 목사가 선교 현지를 떠나 온 지 4년이 되었지만 정기 후원자 20여 명은 여전히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제 목회 철학은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하면 돈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2012년 12월 <국제선교신문>을 창간하면서도 그 믿음은 발휘되었다. 신문 발행에는 아무 경험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 주셨다. 선교사로서의 경험이 현직 선교사들을 위한 일을 하게 했다.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신문을 만들고,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아 고국에 돌아왔을 때 쉴 만한 공간을 준비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 마지막 때에 무엇보다 선교에 한국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추동한다.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지 제 개인의 일이 아니잖아요? 아버지 일을 대리해주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필요를 공급해 주시지 않겠어요? 이 원리를 알면 간단합니다. 지금은 한국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 선교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이성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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