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초기 정락교회와 신용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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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파워뉴스 기자 작성일2021-03-31 19:27본문
고해성(서울지구 원로목사회장)
정락교회의 출발은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독교에 입문한 이기재씨 가정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고해성 전도사와 연이 닿아 정식으로 문정교회라 이름 짓고 3월 첫 주일에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교회로서의 첫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 문정리 일때는 넓은 농토와 풍부한 수리시설을 바탕으로 농사에 주력하는,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해온 150여 호로 형성된 집단 부락이었다.
처음 개척 당시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당시 서울 성남교회 유경손 천년회장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1958년 5월에 아담한 교회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교회 건립 이후 카나다 선교부 구애련(Miss Current)
선교사와 세브란스병원 Dr. Roff Dr Rose 선교사, 이창룡 약사등의 헌신적인 봉사로 무료 진료,영화 상영, 전도 집회, 농번기 탁아소, 농촌 일손 돕기 등 주민 숙원사업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마을
주민들로부터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또 1961년 부활 주일을 기해서는 인근 가락교회와 연합하여 하난의 교회를 이루고 이름을 ‘정락 교회’ 로 변경하여 교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정락 신용협동조합
1967년 9월 군목 생활을 마치고 다시 정락교회에 재 부임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마을의 활력을 위한 일환으로 신협 운동을 배웠고. 교회가 중심이 되어 1969년 11월 5일에 ‘정락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하게 되었다. 신협은 인근의 주민들에게 까지 대상을 확대하면서 저축과 신용대출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초지일관 흔들림 없이 함께 노력했고 ,이제는 든든히 서 가고 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 현제 약 950 억 원 의 자금이 회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정락신협이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교회는 무릇 지역사회 복음화에 소금과 빛,그리고 누룩이 되어야 한다. 신협 임직원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섬길때만이 그 본래의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정락교회와 정락신용협동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기도드린다.
지역 사회와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마을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노래는 나운영 선생이 한국민요풍으로 작곡을 해 주신 곡에 다음의 가사를 붙였다.
우리 사는 마을은 장사의 마을, 힘도 세고 물도 맑은 깨끗한 마을, 인조대왕 쉬어가신 아늑한 마을 ,정자나무 고을에서 잘 살아보세,
우리 사는 마을은 문정리 마을 ,서로 돕고 사는 마을 즐거운 마을, 노는 사람 없는 마을 일 하는 마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잘 살아보세
우리 뭉쳐 힘쓰면 안 될 일 없고 ,앞지 뒷집 함께 모여 슬기를 모아 서로서로 이웃 돕는 돌보는 마을 온누리에 본이 될 마을 만드세.


